[sylent의 B급 토크] 오르가즘의 미학, 박경락

[sylent의 B급 토크]는 월드컵보다 스타리그를 좋아하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물량전 보다는 깜짝 아이디어가 녹아있는 ‘올인’ 전략에 환호하는 sylent(박종화)와 그에 못지않게 스타리그를 사랑하지만, 안정적인 그리고 정석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정착되는 그날을 꿈꾸며 맵과 종족의 밸런스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강조하는 왕일(김현준)이 나눈 스타리그에 대한 솔직담백한 대화를 가공해 포장한 B급 기록이다.


[sylent의 B급 토크] 오르가즘의 미학, 박경락

sylent : 박경락이 서바이버 예선을 통과했어. 그것도 한동욱을 <815 3>에서 꺾고 말이야. 놀랄만한 일이야.

왕일 : 홍진호와 조용호가 저그를 양분하던 시절, 저그의 또 다른 극을 보여주었었는데. 짧고 굵은 서사시였지, 지나치게 짧고 너무나 굵은. 스타리그에 늦게 동참한 팬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전성기의 박경락은 정말, 진짜, 대단했어.

sylent : 여느 선수의 재기 못지않은 응원들로 커뮤니티들도 들썩이고 있어. ‘공공의 적’이라는 닉네임을 기억한다면, 서바이버 진출 정도로 팬들의 응원을 받는다는 건 민망한 상황인데. 하긴 박경락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걸, 늦은 시기에 스타리그에 합류한 팬이라면.

왕일 : 그런 의미에서 ‘공공의 적’을 반추해볼까?


박경락의 시작

sylent : 사람들이 박경락에 지나치게 열광했던, 박경락을 무모하게 지지했던, 그리고 이제 와서 미칠 듯이 응원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아. 감은 오는데 한마디로 꼭 집어서 얘기하기는 힘드네. 으음. 뭐랄까, 전무후무한 ‘농락형 저그’라고 하면 되겠다.

왕일 : 맞아. 당시에도, 지금의 마재윤 처럼, 힘으로 테란을 찍어 누르는 조용호가 존재했어. 하지만 테란의 임요환이나 프로토스의 강민처럼 상대방을 ‘유린’하며 승리할 수 있는 저그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았지. 임요환과 최연성, 강민과 박정석이 다르듯 박경락과 조용호는 다른 노선을 추구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저그도 테란을 난감하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수많은 저그 팬들의 호응을 이끌 수 있었던 것 같아.

sylent : ‘삼지안’, ‘경락마사지’ 등으로 표현되는 농락 운영의 본격적인 신호탄은 [파나소닉 2002 스타리그]에서 였어.


파나소닉 2002 스타리그 / 박경락 vs 임요환 / 개마고원 / 2003-1-10


왕일 : 박경락에게 2가스를 주지 않기 위해서 임요환은 치즈러시를 강행했는데, 박경락의 좋은 드론 컨트롤과 적시의 저글링 추가로 인해 무산됐었지. 그 후에 본격적인 ‘경락마사지’가 시작되었고. 임요환은 천신만고 끝에 박경락의 초도 병력을 밀어냈지만, 저글링-러커 드랍으로 인해 본진과 병력이 분리되면서 패배하고 말았어.


파나소닉 2002 스타리그 / 박경락 vs 임요환 / 개마고원 / 2003-1-10


sylent : 박경락은, 저그가 앞마당 자원을 차지하고 그 자원으로 테란의 병력과 제대로 된 전투를 펼칠 만큼의 병력을 생산하기까지의 피할 수 없는 공백을 측면 공격으로 해결했어. 덕지덕지 깔린 성큰과 그 사이에 숨어있던 러커의 수동적인 방어라인만 접했던 관중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 만 했지. 결국 [파나소닉 2002 스타리그]에서 4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어.


박경락의 절정

왕일 : 박경락이 초중반에만 강했던 건 아니야. 당시 전 대회 우승자이자 ‘그랜드 슬래머’였던, 그리고 아무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윤열에게 16강 탈락이라는 아픔을 주었었지.


올림푸스 2003 스타리그 / 박경락 vs 이윤열 / 기요틴 / 2003-5-2


sylent : 다른 저그 플레이어들과 달리 박경락은 가스 멀티가 늘어날 때마다 전투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었던 것 같아. 레어에서는 레어대로, 하이브에서는 하이브로 뿜어낼 수 있는 최고의 플레이들을 보여줬으니까.


올림푸스 2003 스타리그 / 박경락 vs 이윤열 / 기요틴 / 2003-5-2


왕일 : 이윤열의 자신 만만한 생마린 난입이 막힌 후, 페이스는 그대로 박경락에게 넘어왔었지. 박경락의 또 다른 미덕은 어설픈 타이밍에 어중간한 병력의 공격이 적다는 것이었어. 당시 테란의 기세가 너무 무섭기도 했지만, 필승의 순간까지 공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주요했던 것 같아.

sylent : 홍진호와 조용호 사이에서 공수의 균형을 잘 조절했다는 점도 높이 살만해.


올림푸스 2003 스타리그 / 박경락 vs 서지훈 / 신개마고원 / 2003-5-16


왕일 : 당시 최고의 포스를 자랑하던 ‘퍼펙트 테란’ 서지훈을 상대로 정말 침착한 운영을 보여줬었어. 서지훈의 정교한 드랍십 게릴라, 바이오닉 압박을 유연히 견뎌내고 울트라-디파일러로 압살해버렸지. 마무리의 다크스웜-플레이그 콤보는 잊을 수 없는 짜릿함으로 남아있어. 서지훈은, [올림푸스 2003 스타리그]의 우승자였다고.

올림푸스 2003 스타리그 / 박경락 vs 서지훈 / 신개마고원 / 2003-5-16


sylent : 하지만 [파나소닉 2002 스타리그]와 [올림푸스 2003 스타리그] 차례로 조용호, 홍진호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건, 동족 전에 약한 박경락의 한계였지.


박경락의 몰락

왕일 : 그리고 [마이큐브 2003 스타리그]에서 임자를 만난거지.


마이큐브 2003 스타리그 / 박경락 vs 박용욱 / 신개마고원 / 2003-10-24


sylent : 박경락의 힘이 ‘2가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지면서, 김동수의 피를 이은 박용욱의 하드코어 러시에 결국 실신하고 말았어. 왜 두 번째 해처리를 입구에 건설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남겨둔 채, <패러독스>에서 테란을 선택하는 코메디를 보여주며 세 번째 결승 도전에 실패하고 말았지.


마이큐브 2003 스타리그 / 박경락 vs 박용욱 / 신개마고원 / 2003-10-24


왕일 : 이 경기가 박경락의 앞날을 예고했었던 것 같아.


당시 경기를 지켜보던 미모의 팬. 박경락의 장기 버로우를 예감함.


sylent : 그리고, 아슬아슬했던 박경락의 페이스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사건이 있었어.


NHN 한게임 03~04 스타리그 / 박경락 vs 변은종 / 노스텔지어 / 2004-2-6


왕일 : 테란을 메인으로, 프로토스를 디저트로 즐기던 박경락의 아킬레스건은 동족전이었던거지.


NHN 한게임 03~04 스타리그 / 박경락 vs 변은종 / 노스텔지어 / 2004-2-6


sylent : 언제나 12드론으로 출발하던 박경락의 고집이 결국 성큰 러시라는 치욕을 낳고 말았어. 완전히 망가져버린 박경락은 동료였던 나도현과의 멋진 경기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중원에 나타나지 않았지. 아니, 나타나지 못했지.


오늘의 결론

왕일 : 한여름 밤의 꿈만 같아.

sylent : 단 세 번의 시즌으로 전설이 된 저그 플레이어라니, 정말 대단하긴 대단했어.

왕일 :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sylent : 박경락에게 ‘너무’ 기대하지 말 것. 그에 대한 추억은 ‘원나잇스텐드’처럼 짜릿하지만, 스타리그라는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니까. 추억은 추억으로 간직할 때 가장 아름다운 것 아니겠어?

왕일 : 하긴, 박경락이 서바이버에서 고전하면 또다시 아픈 가슴을 쥐어뜯어야 할 것 같아. 마음을 비우자.

sylent : 그 말이 정답!

왕일 : 그나저나, 포토샵 실력이 이게 뭐냐. 발로 하는거 아냐?

sylent : 아놔~


by sylent, e-sports 저널리즘.


by sylent | 2006/08/04 22:27 | * e-sports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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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렛잇비 at 2006/08/04 22:47
어째 제가 포스팅한 것과 소재도 시간도 비슷하군요. 음, 저는 그래도 '너무' 기대하고 싶습니다. 오랜만이잖아요. (← 정말 뜬금 없군요. -_-)
Commented by 세이시로 at 2006/08/04 22:57
'농락형 저그'! 바로 그것이죠. '경락 마사지'라는 용어만큼 그 느낌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도 없군요. 박경락의 최대 희생자였던 베르트랑의 그 일그러진 입술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
Commented by 여우비 at 2019/07/30 17:52
어제(2019년07월29) 사망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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