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 다섯 번째 본좌.

[sylent의 B급칼럼]은 월드컵보다 스타리그를 좋아하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물량전 보다는 깜짝 아이디어가 녹아있는 ‘올인’ 전략에 환호하는 sylent(박종화)와 그에 못지않게 스타리그를 사랑하지만, 안정적인 그리고 정석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정착되는 그날을 꿈꾸며 맵과 종족의 밸런스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강조하는 왕일(김현준)이 나눈 스타리그에 대한 솔직담백한 대화를 가공해 포장한 B급 담론이다.


[sylent의 B급칼럼] 이영호, 다섯 번째 본좌.

오영종과 박지호, 송병구가 합심한 ‘신3대토스’는 김택용의 어깨에 종족의 미래를 걸었다. 그리고 깊은 슬럼프를 탈출한 송병구의 눈부신 활약 덕분에 2007년의 절반을 프로토스의 시대로 그리고 있다. 저그는 여전히 마재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나, 안타깝게도, 2007년 6월 29일부로 ‘마재윤의 독재’는 마침표를 찍었다. 저그는 신성을 기다리는데 지쳐 포기할 지경이다, 블록버스터 테란 이성은과 다섯 번째 본좌 후보 이영호가 테란에 재빨리 합류하는 동안에 말이다.


이영호의 포지션

테란 플레이어들이 갖는 페르소나를 active함과 passive함으로 단순이 갈라 나열한다면

한동욱 - 임요환 - 신희승 - 변형태 - 이영호 - 이윤열 - 염보성 - 최연성 - 이성은 - 전상욱

정도로 합의할 수 있겠다. 이영호의 가장 큰 장점은 운영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이다. 그의 기질은 경기를 이끌어가는 여러 개의 평면을 만들어주고 있다. 부득불 자신의 스타일에 칼을 대야 했던 이윤열과 달리 스스로 선택한 유연함을 지니고 있으며, 승리를 위해 최적화 된 전략으로 똘똘 뭉쳤다는 점은 본인도 즐겁고 보는 이도 흥미로운 신희승의 전략과 차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영호는 너무 많은 경기가 양산한, 그래서 언제나 팬들의 질타에 시달리는 “일단 앞마당”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이영호의 경기는 잘 짜여진 이야기에 전통적으로 굶주려 있는 e스포츠 팬들의 욕구와 속속 맞아 떨어지고 있다. 이영호라는 테란 플레이어의 순항에 e스포츠 팬들이 ‘요즘, 누구 뜨는구나’ 이상의 긍정적인 시선을 던지는 것은 비단 어린 나이 때문은 아니다. 이영호의 선전이 다채롭고 풍성한 아이디어에 기반하고 있으며, active한 운영의 부활을 통해 지리멸렬한 테란의 운영 철학을 종횡으로 넓히는데 활력을 주는 한 힘이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이영호, 다섯 번째 본좌.

오늘 김택용을 침몰시킨 운영은 도박이 아닌, 전략이었다. 이영호는 passive한 운영에 부족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active한 운영을 준비한다. 게다가 초반의 모험과 후반의 도모를 갈라놓고 부질없는 산수를 벌이지 않는다. 확신이 있을 때는 과감히 지르고, 아니면 경기를 한 없이 길고 넓게 바라본다.

이영호 본인 스스로도 매우 자신 있어 할 운영의 미학을 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과 같은 팀의 동료를 제외한 누구도 이영호의 선택을 알 수 없다. 이영호라는 테란 플레이어에 대해 주어진 단서가 너무 빈약하기 때문이다. 이윤열에게 한 수 배웠다는 점만으로도 이영호 고유의 스타일에 대한 단서는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브라운관을 통해 소개된 이영호의 경기들에서 그를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을 찾아내기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

15전 13승 2패라는 놀라운 성적은 도박과 전략의 경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 젊은 피만의 유연함이 촉매로 작용한 덕분이다. 조금 이른감이 있지만, 나는 이영호에게서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그리고 마재윤의 다음을 책임질 ‘본좌’의 기운을 느꼈다. 이영호는, 경기를 일종의 대화로 간주하고 그것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다양함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 팬들의 후각을 감동시킬 훌륭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그래서 테란이라는 종족과 이영호라는 선수의 각별한 접점이 제시할 새로운 패러다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송병구라는 거함이 버티고 있기에, 이번 시즌의 우승은 놓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높은 완성도의 시나리오는 언젠가 빛을 보기 마련이니, 진득하게 갈고 닦아라. 나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뒤덮인 블록버스터의 홍수 속에서 빈틈없는 반전 영화 한 편을 발견한 기분이다. 사실, 웬만하면 우승할 것 같기도 하다.

팬들은 현혹이 아닌 설득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만천하에 고하는 이 작은 테란 플레이어가 [2007 다음 스타리그] 4강이라는 가파른 언덕빼기에서 다음 발을 어디로 뗄 것인가 조바심을 내며 구경하고 있다.

@송병구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차세대 본좌로 점지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훌륭한 테란은 프로토스를 짓밟을 수 있고, 뛰어난 저그는 테란을 압살할 수 있지만, 프로토스는 저그를 이길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한줄요약.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by sylent | 2007/06/30 02:48 | * e-sports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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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슈3花 at 2007/06/30 03:15
아아, 제가 김캐리가 된 기분입니다. 응원만하면 떨어지니 이거야 원 ㅠ
Commented by kisnelis at 2007/06/30 09:20
변형태와 이영호의 결승전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Lucypel at 2007/06/30 09:47
개인적으로는 이영호가 "강력하지만 재미없는" 스타일로 생각됩니다. (물론 매우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어제 경기는 축구 중계 때문에 못 봤지만, 이영호는 왠지 임요환이나 이윤열, 최연성보다는 마재윤에 가까운 스타일이더군요. 초반이던 중반이던 후반이던 탄탄하고 잘 짜여진 흐름으로 경기한다는 부분은 대단히 강력하겠지만 아슬아슬하다거나 무자비하다거나 환상적이라던가 하는 매력은 부족한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
Commented by MCtheMad at 2007/06/30 23:42
전 MSL 위주로 봐서 아직 영호어린이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어요 -ㅇ-
Commented by ^^; at 2007/07/01 00:49
아슬아슬하게 하는 재미가 인간적이어서 끌린다고 스타 뒷담화에서 얘기하더군요.
아무래도 그런 재미는 올드 게이머들에게 찾아야 할 듯 합니다.

이영호는 초반 도박수도 합니다. 김택용과의 첫 경기가 그랬죠. 더블넥을 선택한 이상 질 수 밖에 없는 초반 타이밍 러시.
길막기도 SCV동원도 컨트롤도 아주 깔끔하고 강력했습니다. 마치 임진록 벙커링을 연상시킬 정도로 머리 속이 하얘지면서 답이 없다는 느낌이었어요.
Commented by sylent at 2007/07/01 16:53
슈3花 님 // 그런 재미로 응원하는거 아니겠습니다. 흐흐.

kisnelis님 // 고도의 온겜까? (농담인거 아시죠?) 테테전은 안습이예요~

Lucypel님, MCtheMad님 // 조금만 더 지켜보세요. 이 친구, 사고 한 번 칠겁니다. -_-)B

^^;님 // 바로 그 느낌이 본좌로 가는 초석이라니까요~ 헤헷.
Commented by kisnelis at 2007/07/03 23:35
매번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는 이영호vs김준영에서 로열로더이자 차세대본좌인 이영호가 올라가길 바라고,
송병구는 잘하긴 하지만 너무 완벽한 기본기 스타일이라 재미가 없고
변형태를 응원해서 변vs이 를 말한 겁니다.
그 둘이라면 다른 조합보다 더 재미있는 테테전을 만드리라 기대도 하고요 그럼~
Commented by Sooz at 2007/07/04 23:58
스타리그 4강에 진출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지만,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잔뜩 기대를 갖게 했던 신희승군도 지금 바닥을 헤매고 있으니...
Commented by 하지만 at 2007/08/03 07:28
하지만 안타깝게도...요즘 이영호 캐리어에 대한 징크스가 걸려버리고 말았죠...윤용태, 송병구, 안기효 이렇게 하나같이 관광당했다고 하는데요...이것들 대부분 캐리어때문에 관광 당했다고 합니다....심지어 송병구 경우는 3:0관광 당했고요....
Commented by Northwind at 2011/03/14 01:38
와우... 거의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맞아떨어졌군요.
소름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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