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의 믿음
경기가 끝난 후, 송병구는 “참 많이 연습했는데, 하나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며 울먹였다. ‘준우승’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팬들의 가슴을 사정없이 흔들기에 충분했지만, 잠을 줄여가면서 수행했던 피토하는 연습이 ‘드래군 드라이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경기 내용에 살짝 실망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썰을 풀기 전에, 참고그림 한 장.

송병구를 향한 이영호의 믿음은 확고했다.
첫 번째 믿음 : 로보틱스-홀릭테란을 상대하는 송병구의 운영, 그 운영의 핵심은 ‘리버’다. 리버에 대한 기존의 인식(대박이 터지면 승리, 중박이 터지면 막상막하, 쪽박이 터지면 포기)의 전환은 송병구의 손끝에서 시작되었다. 송병구는 대박을 쫓지 않고 리버의 생존률을 높이는데 더 정성을 들인다. 리버는 반드시 살아 돌아오고, 대규모 접전에서 화력을 더한다. 아무리 신경을 써도 뭉치기 마련인 시즈탱크들 한 가운데 스캐럽을 터뜨리며 자신의 리버 생산은 ‘단타매매’가 아닌 ‘장기투자’의 일환임을 증명한다. ‘슈팅스톰’의 자리를 ‘슈팅리버’가 대체하니 프로토스의 승률이 화끈하게 늘었지만, 그 훌륭한 리버 관리가 이영호표 안티-캐리어 빌드를 탄생시킨 주범의 혐의를 벗어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아는 ‘리버’의 위용은 이영호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주었다. 이영호는 믿었다. “로보틱스다”. 그리고, ‘로보틱스’였다.
두 번째 믿음 : 예외는 없다“아, 그 유리한 상황에서 왜 공격을 하나요! 지나친 공격성이 화를 불렀어요!”
“그 유리한 상황에서 왜 공격을 가지 않았나요! 끝낼 수 있을 때 확실히 끝냈어야죠!”
‘투신’ 박성준의 경기 해설을 들을 때마다 웃음을 멈출 수 없다. ‘투신’, ‘투신’ 하니까 박성준은 공격만 한다. 열심히 공격하다 지면 너무 공격적이라 졌다고, 경기를 길게 끌면 특유의 공격성을 발휘하지 않아 졌다고 평가한다.
‘무결점의 총사령관’. 우습기도 우스운 닉네임이지만, 송병구의 발목을 잡기에 부족하지 않은 닉네임이기도 하다. ‘무결점’이라는 단어는 드래군, 멀티, 리버, 옵저버, 캐리어를 의미한다.
‘예측가능함’은 다전제의 죄악이다. 박정석, 박용욱, 강민, 오영종, 김택용의 우승은 ‘놀라움’과 함께했다.
‘몸부림’은 누구의 몫인가홍진호는 역사에 길이남을 <라그나로크>에서 전진해처리(그냥 전진해처리가 아니다, 임요환의 뒷마당에 해처리를 지었다)에 이은 성큰 러시라는 모험을 감행했다, 비록 경기는 졌지만. ‘고민‘은 수세에 몰린 놈의 몫이다. 송병구는 이영호가 ‘색다른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했었어야 했다. (이미 했을지도 모르지만) 1경기는 아예 정찰이 없었고, 2경기는 넥서스를 소환한 뒤 프로브가 출발했다. 안일하기 짝이 없다. 아이고, 쓰다보니 답답하다. 그만해야지. 송병구는, 미안하지만, 질만했다. 하던 대로 해서 우승하겠다고? 훗.
한줄요약.
승률 70%라는 말은 열 판중 세 판은 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세 판이 오늘일수도 있다.